세부 목차 (Table of Contents)
여기에서 설명할 내용은 어쩌면 도색으로 질감을 재현하는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색상이 변화하는 느낌만이 아니라 그런 변화를 잘 재현해 내서 질감마저도 다르게 느끼도록 해 주는 기법인 것입니다. 어쩌면 평소에 하던 도색이라기 보다는 회화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라데이션(Gradation)
두 가지 이상의 색이 명확한 경계가 없이 차차 변해가는 것을 그라데이션이라고 합니다. 대략 이런 느낌이죠. 순 우리말로는 ‘바림’이라고 하는데 오랫동안 일본어 잔재로 ‘보카시’라는 용어로도 사용되곤 했습니다.
가시광선 스펙트럼을 보면 일곱가지 색상이 순차적으로 그라데이션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가 빨간색이고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가 노란색인지 명확하게 보이시나요? 이렇듯 색의 경계가 정확하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통 그라데이션이라고 합니다.

하나의 색상에서 다른 색상으로 변해가는 방식으로 칠하는 기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간단한 것이 에어브러시를 이용해 마스킹영문 : Masking 에어브러시나 캔스프레이로 특정 부분만을 칠할때 도료가 그 주변가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불필요한 부분은 도료가 묻지 않도록 무엇인가로 덮어주는 작업을 마스킹이라고 합니다. 이 마스킹에 사용되는 재료로는 마스킹 테이프, 마스킹 졸 등이 있습니다. 마스킹 졸은 액체 상태로 바른 후에 건조하면서 반투명한 비닐과 같은 막을 형성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더 보기 테이프를 사용해서 경계선을 나누는 방식이 아니라, 프리핸드로 그리면 자연스럽게 경계가 섞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효과는 붓 도색으로도 충분히 얻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단청과 같이 색의 경계가 명확한 경우에도 주변 색이 어떤 것이냐, 그리고 어느정도 면적으로 나누어져 있느냐에 따라 얼핏 보면 그라데이션처럼 보이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만드는 모형은 대부분 축소 모형이기에 설령 프리즘 분위기가 아니라 단청처럼 색의 경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라데이션처럼 보이기 좋은 환경입니다. 물론 더 부드러운 그라데이션을 하기 위해서는 다음에 설명할 블랜딩과 같은 기법을 더 연마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붓 도색만으로 에어브러싱에 의한 그라데이션처럼 자연스럽고 폭이 넓은 그라데이션을 표현하기에는 높은 숙련도가 필요한 관계로 일반적으로 그라데이션이라는 표현은 에어브러싱으로 표현한 것을 의미하고, 블랜딩은 붓 도색을 표현하는 의미로 자주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맥스 도색법도 이런 그라데이션 방식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라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큰 면적이 있다고 가정하면 하나의 평면인 것처럼 보이더라도 빛이 닿는 양이 서로 달라질 수 있고, 이때문에 조금 더 밝고, 조금 더 어두운 부분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본래의 면은 변하지 않고 동일한 상태라고 하더라도 빛이 어느정도 닿느냐에 따라 밝고 어두움은 차이가 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블랜딩(Blending)
서로 다른 두 색깔을 경계선 부분이 다소 겹치게 칠한 후 그 경계선 부분을 시너를 묻힌 붓으로 살살 문질러 주면 경계선이 희미하게 되면서 두 색깔의 경계선 부분이 아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효과가 나타나는데, 이를 블렌딩이라 합니다. 보통 인형을 색칠할 때 명암을 넣은 후 그 경계 부분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데에 널리 쓰이는 기법입니다.


블랜딩은 색의 변화를 회화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기법의 하나로 하나의 색상과 인접한 다른 색상의 중간 색조의 색상을 만들어 경계를 칠해주는 방식으로 몇 단계를 거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라데이션이 만들어지도록 활용되기도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색상을 만들어 섞어주는 방법도 있고, 유화처럼 건조 시간이 긴 도료를 이용한 경우에는 시너를 이용해 두 색상 사이에서 직접적으로 색을 섞어주는 방식으로 블랜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붓 도색에서는 블랜딩이라는 방법으로 두 색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자연스럽게 색조가 변하는 것처럼 구현할 수 있습니다. 이 또한 숙련도와 나름의 요령이 필요합니다. 에어브러싱으로 색조의 변화를 보이기 위해서는 색상이 칠해지는 영역이 꽤나 넓을 수록 유리하므로 자그마한 모형에 관심있으시다면 붓 도색 블랜딩은 계속 연습해 두어야 하는 기술입니다.

NMM (Non Metallic Metal)
이런 기법들에 빛의 반사까지 염두에 두고 색을 칠해주는 기법으로 NMM (Non Metallic Metal) 이라는 기법이 있습니다. 단순히 색상의 경계만 섞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빛이 어떻게 비치고 어떻게 보여지는지까지 염두에 둔 기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천년간의 회화 기법이라고 하면 조금 오버고… 그나마 화려한 시절이라고 할 수 있는 르네상스 시기에도 금속 색을 표현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었고, 현재의 만화 영화에서도 이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니만치 유구한 역사와 검증을 거친 도색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기법의 시작은 매우 간단하게도 도화지에 사과같은 것을 그릴 때 자연스럽게 밝고 어두운 부분을 나누어 색칠하는 경험을 해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사과 대신 금속 질감이 나는 갑옷과 같은 물건이라면 어떨까요? 당연히 손쉽게 메탈릭 컬러 도료를 칠하면 될 것 같겠지만 실상은 메탈릭 도료를 칠해도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기에는 다소 심심하다는 경험을 해 보신 적이 있을겁니다. 여기에다 메탈릭 도료가 아닌 일반 도료를 가지고 이런 효과를 내고 싶다면 어떨까요? 가장 좋은 예가 만화영화에서 반짝거리는 금속 덩어리를 표현할 때 어떻게 표현했었는지를 상상해 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은색처럼 반짝이는 칼 끝은 실제로 흰색으로 칠해져 있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고, 분명히 은색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도 밝고 어두운 회색들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특히 금속색 단색으로 칠했다면 절대로 보여지지 않을 검정색도 일부분에는 자리하고 있었을거구요.


위에 있는 사진 중 왼편은 3D 입체인 실제 갑옷1)이고, 오른편은 2D 평면에 그려진 갑옷 그림입니다.
우리가 작업해야 하는 모형은 이 중간 어디쯤이라고 생각해야 할 듯 합니다. 3D 입체인 모형이라고 해서 금속색을 단색을 칠해 놓고 보면 아주 섬세한 광원이나 반사까지 실제 환경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관계로 같은 3D 오브제지만 실제 갑옷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2D 평면에 그린 그림과 같은 회화적 기법을 사용했다가는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게 되겠죠. 심지어 일상 생활에서의 광원이나 촬영을 위한 조명때문에 생기는 빛의 각도등을 생각하면 선명한 음영이 오히려 이질감을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3D 입체 오브제에 더욱 입체감을 주기 위해 색을 칠하는 것이니까요.
잠깐 옆으로 샜지만 오른편의 그림에서도 금속 가루를 갈아서 섞은 메탈릭 도료를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금속의 느낌은 충만하죠. 우리가 신경써야 할 것은 저 부분입니다. 실존하는 금속이 아니라 우리가 금속이라고 느끼게 되는 관념적인 금속의 느낌을 메탈릭 도료와 같은 특수 도료가 아니라 일반 도료로도 충분히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이죠. NMM은 그런 의미에서 보다 회화적인 접근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블랜딩에 익숙해지고 자신만의 색 조합 레시피를 가지고 있다면 아래 사진과 같은 표현이 가능해집니다. 일반적으로 금색하면 금색 도료를 뿌리고 음영을 살짝 주는 정도를 생각하겠지만 금색이 아닌 일반 도료(동그라미 안에 들어있는 색 조합)로 도색해서 금속이 가지는 특유의 반사광까지 표현해낼 수 있어 주로 히스토리컬 피규어 계열에서 자주 사용되는 기법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메탈릭 도료를 사용하지 않고도 우리의 뇌가 착각인지 세뇌인지 모를 묘한 축적된 경험때문에 금속색처럼 느껴지도록 만드는 기법을 NMM (Non Metallic Metal) 기법이라고 합니다.
사진은 색 조합 레시피대로 세트를 구성해 판매하고 있는 AK 아크릴 컬러 제품의 샘플 이미지입니다. 색 조합을 보시면 금속 계열 색상은 사용하고 있지 않음에도 그 어떤 금속 도료보다 더 금속같은 느낌을 전해 줍니다2).


하지만 이같은 기법은 너무나도 회화적인 기법인지라 저처럼 고등 미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접근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습니다.
위에 있는 모형을 도색한 Kirill Kanaev 님의 책 ‘Figure Painting Techniques F.A.Q’ 라는 책을 보면 이같은 레시피를 비롯해 다양한 노하우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책이 몽땅 영어라는 건데… 누가 번역 좀 안해 주시려나요?
어쨌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자들께서 유튜브를 통해 많은 가르침을 베풀고 있으므로 레시피나 작업 방식등을 공부하기에는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아래 있는 동영상은 이런 가르침의 사례중 하나입니다.
NMM 은 너무나도 심오한 경지인지라 나중에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가르침 중에 아주 섬세하게 블랜딩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분들도 꽤나 많고, 실제로 완성 결과물들을 보면 효과 또한 매우 훌륭하므로 블랜딩 기법의 숙련도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래에 있는 두개의 동영상은 같은 목적인 칼을 칠하는 방식을 NMM 으로 비교적 짧게 (6분) 설명한 동영상과 엄청나게 길게 (무려 한시간) 설명한 동영상입니다. 레시피가 있고, 누군가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고, 결과물의 수준에 만족할 수 있다면 6분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효과를 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TMM (True Metallic Metal)
NMM 이라는 기법의 반대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하고…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는 개념으로 TMM (True Metallic Metal)이라는 기법도 있습니다. 요즘에는 메탈릭 도료의 품질도 매우 좋아졌으므로 일반적인 메탈릭 도료를 사용하는 방식이죠. 도료의 선택만 메탈릭 도료로 바뀌었을 뿐 기법 자체는 NMM 과 유사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기법이나 과학기술의 발달로 더 좋아진 도료물감들의 총칭 더 보기 제품을 생각해 보면 TMM 기법이 조금은 더 접근하기 쉬운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모델러의 취향과 제작 의도에 맞느냐 하는 것이므로 다양한 기법들이 있음을 확인하고 필요에 따라 취사선택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메탈릭 도료를 사용할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시중에 출시되는 많은 메탈릭 아크릴 도료는 시너(물)를 조금만 섞어도 차폐력이 떨어집니다. 이유는 메탈릭 도료물감들의 총칭 더 보기 안에 있는 금속 입자가 농도가 묽어진 도료에서는 그 밀도가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희석하지 않고 사용하자니 도막이 너무 두꺼워져 원치 않는 질감이 생기기 쉽습니다. 위에서도 살짝 얘기했지만 모형은 1:x로 줄어들었는데 금속 입자의 크기는 대략 1:1일 수 있어서 전체적인 느낌이 어색해지는 것이죠. 예전에도 이야기했다시피 우리 눈은 1/100mm까지는 차이를 인지합니다. 때문에 메탈릭 도료를 사용할 때에는 시너의 양 조절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붓의 관리에도 신경을 더 써야 합니다. 아크릴 메탈릭 도료가 묻은 붓을 세척하기 위해 컵안에서 잘 씻어내고 나면 물안에 금속 조각이 가득 차게 됩니다. 이 물을 이용해 다른 붓을 세척하거나 도료를 희석할 경우 당연하게도 오염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어디까지나 일반 도료의 안료가 아닌 메탈릭 도료의 금속 조각이 이 현상의 원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