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간에게 시스템이 제공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HCI 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시각 정보는 이미 충분하고 (물론 더 발전되겠지만) 청각 정보 또한 나름 충분한 세상을 살고 있다.
여기에 최근에는 미각과 촉각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는 증강현실기술들이 차츰 미디어에 노출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세상이 이렇게 다양한 감각들을 자극하는 정보들로 넘쳐날 때 과연 우리네 삶은 어찌될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시각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눈을 감으면 대부분의 시각 정보들은 차단된다. (여전히 네온의 깜빡임은 차단되지 않는다. 다른 곳으로 피하는 수 밖에...) 이런 감각의 차단은 증강현실에서도 동일한 방식이 통하게 된다.
하.지.만... 청각 정보의 홍수는 어떠한가?
언제 정보가 쏟아져 들어올 지 알수 없는 관계로 그런 것이 싫다면 이어폰을 꽂아서 현실 세계와 나를 분리시키는 작업을 해야만 하는 것이 현재의 기술 수준이다.
거기에 대한 대안으로 사용될 수 있을 법한 기술이 바로 음향 정보를 일정 영역에서만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지향성 스피커 시스템이다.
오늘 뉴스를 읽다 관련된 기사 한토막이 나와서 소개하니 읽어 보시라.
어찌됐건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양의 스팸 (내 삶에 필요없는 정보들을 통칭해도 무리가 없으리라) 으로부터 개인을 지키는 방법을 스스로 개발하기 전에 시스템 측에서도 이런 것들을 고려해 시스템을 설계했으면 한다.
설계자 역시 시스템 이용자일 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말이다.
스피커 소리를 나 혼자 듣는다!?
누구나 좋아하는 소리만 듣고, 싫어하는 소리는 듣지 않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이런 욕구조차 충족시키기 쉽지 않다. 손님을 끌기 위해 볼륨을 한껏 높인 상점의 스피커 소리, 옆 사람의 이어폰을 통해 새 나오는 음악 소리 같이 듣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할 때가 많다.
집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다른 식구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TV, 라디오, 컴퓨터의 볼륨을 작게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게 기분 좋은 음악도 타인에게는 듣기 싫은 소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소리를 줄이기 위해 그저 조용조용히 다니는 방법 밖에는 없는 것일까? 여기 소리로 소리를 제어하는 방법이 있다.
얼마 전 한국과학기술원 김양한 교수팀은 특정 개인에게만 소리를 들리게 하는 ‘음향집중형 개인용 음향시스템’(sound focused personal audio system)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소리의 간섭현상을 이용해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고 사용자만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만든 장치다. 귀를 아프게 하는 이어폰이나 헤드셋을 쓰지 않아도 나 혼자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모니터에 일렬로 배치된 9개의 스피커에서 800Hz에서 5kHz의 서로 다른 주파수의 소리를 내게 하여 모니터 정면에 지름 30cm 정도의 청취영역을 만들었다. 김 교수 팀에 의하면 청취영역에서는 나란히 늘어선 9개의 스피커에서 나온 음파가 다른 공간 보다 20dB(데시벨, 소리의 단위) 큰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스피커의 앞부분을 0도부터 180도까지 구분한다면 스피커의 바로 정면에 해당하는 60~120도 사이에서 크게 들리고 다른 각도에서는 매우 작게 들린다. 미국 음향학회(ASA)에 발표된 자료와 각도별로 나는 소리를 듣기 원하면 다음 사이트를 방문해 보자.
소리 들으러 가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는 소리가 근본적으로 파동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2개 이상의 파동은 서로 섞여 간섭현상이 일어나는데 위상이 같은 파동끼리 만나면 커지고, 위상이 반대인 파동끼리 만나면 작아진다. 커지는 경우를 보강간섭, 작아지는 경우를 상쇄간섭이라고 부른다. 김 교수의 스피커는 청취영역에서만 보강간섭이 일어나고, 다른 장소에서는 상쇄간섭이 일어나도록 만든 것이다.
사실 소리의 간섭현상으로 소리를 제어하려는 시도는 이미 오래 전 시작됐다. 대표적인 시도가 듣기 싫은 소음을 제거하는 능동소음제거(ANC: Active Noise Control) 기술이다. 능동소음제거 기술은 소음과 반대 위상의 소음을 만들어 소음을 없앤다. 이미 1932년 독일의 발명가 루에그에 제안됐으며, 최근 전자제어기술의 발달로 실용화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건축용 돌을 자르는 현장의 근로자는 엄청난 소음에 시달리는데, 석쇄기의 소음을 녹음해 이와 반대되는 위상의 소음을 근로자에게 들려준다. 항공기도 이 기술을 이용해 엔진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소음을 줄인다. 최근에는 고급 승용차에도 엔진이나 바퀴와 지면 사이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제거하기 위해 능동소음제어 기술을 쓴다.
이 기술을 쓰면 방음, 흡음제를 쓰지 않아도 소음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철로나 도로변에 있는 아파트 단지 주변에 설치되는 대규모 방음벽은 비용이 많이 들고 조망권도 해친다. 물론 능동소음제거 기술의 한계도 있다. 발생하는 소음이 불규칙하면 이를 정확하게 계산해 반대 위상의 소음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 잘못하면 보강간섭을 일으켜 오히려 소음을 증가시킬 수도 있다.
능동소음제거 기술처럼 물리적으로 소리가 제거되는 것과 달리 생리적으로 소리가 제거되는 현상도 있다. ‘마스킹효과’(masking effect)는 한 소리에 의해 다른 소리가 가려져 듣지 못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화장실에서 먼저 물을 내리고 소변을 보면 소변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소음으로 소음을 덮는 것이다.
여러 소리가 섞인 시끄러운 장소에서 듣고 싶은 소리만 골라 듣게 하는 방법도 있다. 사람은 적당한 소음이 있어도 듣고 싶은 소리만 골라 듣는 능력이 있는데 이를 ‘칵테일파티 효과’(cocktail party effect)라고 부른다. 라이브 공연을 할 때 가수의 목소리가 반주나 소음에 묻혀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이때 일시적으로 가수가 쓰는 마이크의 볼륨을 크게 증가시킨 뒤 서서히 감소시키면 칵테일파티 효과에 의해 청중들은 가수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소리를 제어하는 것은 역시 소리다. 소리로 소리를 완벽하게 제어하는 것이 가능해지면 층간 소음으로 이웃 간에 다투거나 지하철에서 옆 사람의 음악 소리로 더 이상 불쾌함을 느끼지 않아도 될 것이다. (글 : 최원석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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